입고 No.005 물건 20세기 초 미국

케첩에는 토마토가 없었습니다

가게 카운터에서 불투명한 병을 기울여 검은 즙을 접시에 따르는 점원

케첩에는 토마토가 없었습니다.
생선이 있었습니다.

동남아의 삭힌 생선즙에서 시작해 영국에서는 버섯이 됐고, 미국에서 토마토가 들어갔다.
그리고 1981년, 하마터면 채소가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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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품목번호
005
품목
물건
오늘의 점원
케첩이라는 이름
원산지 (사건의 무대)
동남아에서 미국까지
제조연도
18세기 – 1981년
상품구성
본품 9 + 덤 1
항구 창고에서 도기 항아리를 열고 국자로 검은 즙을 떠올리는 점원과 옆에서 들여다보는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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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생선이었다

17세기 말 동남아의 어느 항구. 영국 상인들이 시장에서 항아리 하나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은 삭힌 생선으로 만든 짭짤한 조미료였다. 지금 감자튀김 옆에 놓인 빨간 소스와는 재료도 모습도 달랐다.

케첩이라는 이름도 민난어의 kê-tsiap과 연결된다. 교역을 따라 소스가 전해지면서, 그 이름도 함께 건너갔다.

토마토가 빠진 케첩이 아니라, 아직 토마토가 들어오기 전의 케첩이었다.

케첩에는 토마토가 없었다.
생선이 있었다.
18세기 영국 부엌 작업대에서 검은 국물이 든 냄비를 젓는 점원과 버섯·호두·굴·멸치가 담긴 그릇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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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버섯으로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다른 재료로 그 소스의 맛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1732년, 식물학자 리처드 브래들리(Richard Bradley)가 「Ketchup in Paste」라는 조리법을 책에 실었다. 출처로는 「동인도의 벤쿨렌」이라고 적었다.

버섯으로도 만들고, 호두로도 만들었다. 굴이나 멸치를 쓰는 조리법도 있었다.

빨간 토마토 소스만 생각하면 전부 엉뚱한 재료다. 하지만 당시 케첩은 재료 하나로 정해진 소스가 아니었다.

버섯으로 만든 묽고 짙은 소스에도 케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인 오스틴이 좋아한 것도 그쪽이었다고 전한다.

버섯도 케첩, 호두도 케첩, 굴도 케첩이었다.
갈색 병과 검은 조미액이 담긴 숟가락, 그리고 김이 오르는 수프 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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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 먹기보다, 한 숟갈 넣었다

버섯 케첩의 옛 조리법을 보면, 버섯을 소금과 함께 으깨고 끓인 뒤 천으로 걸러낸다.

남는 것은 버섯 덩어리가 아니라 짙은 조미액이다.

그걸 수프에 넣고 고기 요리의 소스에도 더했다. 지금으로 치면 굴소스나 액젓처럼 음식에 맛을 보태는 역할이었다.

우리는 케첩을 접시에 짜서 찍어 먹지만, 옛 요리책에는 냄비에 한 숟갈 넣는 케첩도 있었다.

같은 이름인데,
부엌에서 맡은 일이 달랐다.
필라델피아의 책상에서 붉은 토마토를 손바닥에 얹고 들여다보는 점원과 브랜디 병, 향신료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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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브랜디와 함께 왔다

1812년 필라델피아. 의사이자 원예가였던 제임스 미스(James Mease)가 『Archives of Useful Knowledge』에 토마토 케첩 조리법을 실었다.

조리법에 쓰인 이름은 러브 애플(love apple). 당시 토마토를 부르던 이름이다.

토마토를 소금에 재워 끓이고, 메이스와 올스파이스와 샬롯을 넣었다. 식힌 뒤에는 병마다 브랜디를 반 질씩 더해 코르크로 막았다.

이 조리법에는 식초와 설탕을 넣으라는 지시가 없다.

토마토는 들어왔지만, 우리가 아는 새콤달콤한 케첩과는 아직 달랐다.

이 초기 토마토 케첩에는
술이 들어갔다.
19세기 미국 시골 장터에서 마차 위에 올라 약병을 들어 보이는 실크햇 차림의 약장수와 지켜보는 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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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에 약장수가 붙었다

토마토를 음식보다 더 대단한 것으로 팔려는 사람도 나타났다.

1830년대 중반, 오하이오의 의사 존 쿡 베넷(John Cook Bennett)은 토마토가 설사와 소화불량, 콜레라에 좋다고 주장했다. 토마토로 케첩을 만들어 먹으라고도 권했다.

여기에 아치볼드 마일스(Archibald Miles)가 가세했다. 기존에 팔던 알약에 「마일스 박사의 토마토 농축 추출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토마토는 식재료를 넘어 약 광고의 간판이 됐다. 1840년쯤에는 토마토가 들어 있지 않은 알약까지 그 이름을 달고 나왔다.

열풍은 1850년 무렵 꺼졌다.

케첩의 역사를 따라왔는데,
잠깐 약장수의 광고판 앞에 도착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낡은 요리책과 네 귀퉁이에 놓인 토마토·버섯·호두·굴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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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에 네 가지 케첩이 있었다

토마토가 들어왔다고 나머지가 곧바로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1824년에 처음 나온 메리 랜돌프(Mary Randolph)의 『버지니아의 주부(The Virginia Housewife)』에는 서로 다른 케첩 조리법이 실려 있다.

토마토 케첩. 버섯 케첩. 호두 케첩. 굴 케첩.

한 권 안에 나란히 있다.

그 책의 토마토 케첩에는 양파와 향신료가 들어가지만, 설탕을 넣으라는 말은 없다.

지금은 「케첩」이라고만 해도 빨간 병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는 앞에 무슨 재료 이름이 붙는지부터 봐야 한다.
천장 등 하나가 비추는 긴 식탁에 나란히 앉은 다섯 사람과 접시를 내려놓는 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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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두려다, 논쟁이 붙었다

토마토 케첩을 병에 담아 팔려면 쉽게 상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업체들은 벤조산나트륨 같은 보존료를 썼고, 안전성 논쟁이 붙었다.

미국 농무부 화학국장 하비 와일리(Harvey Wiley)는 1883년부터 규제 입법을 추진했지만, 법안은 20년간 번번이 좌절됐다.

1904년에는 자원자들에게 보존료를 넣은 음식을 먹이고 몸의 반응을 살폈다. 복통·두통·어지럼증·체중 감소가 보고됐고, 참가자의 건강 악화로 중단한 시험도 있었다.

신문은 이들을 「독약 부대(Poison Squad)」라고 불렀다.

병 속 소스를 오래 보관하려던 문제가,
사람의 몸에 무엇을 넣어도 되느냐는 문제로 커졌다.
불투명한 병들이 늘어선 선반 가운데 홀로 속이 비치는 투명한 병을 받쳐 든 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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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보여주고, 방부제를 뺐다

하인즈는 투명한 유리병으로 내용물을 보여주며 신뢰를 팔았다.

1906년에는 벤조산나트륨 없는 케첩을 선보였다. 잘 익은 토마토를 충분히 가열하고, 식초를 늘리고, 설비를 청결하게 관리했다.

소금·설탕·식초는 다른 회사 제품의 두 배씩 들어갔다. 2년간 1,200만 병을 만들었고, 변질된 병은 거의 없었다.

하인즈는 보존료를 넣지 않았다는 점을 적극 광고했다. 1911년에는 시장을 주도했고, 1915년에는 주요 업체 대부분이 보존료를 뺐다.

그 과정에서 맛도 달라졌다. 오래 보관하려고 충분히 끓이고 식초와 설탕을 더하면서, 케첩은 걸쭉하고 달고 신 소스가 됐다.

06장의 요리책에 나란히 있던 넷 가운데, 지금 가게에 남은 것은 하나다. 버섯 케첩도 호두 케첩도 그 무렵 밀려났다.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그 맛에는,
오래 두고 팔기 위한 고민도 들어 있다.
급식실 카운터에서 채소 칸에 케첩만 놓인 급식판을 앞에 두고 손을 들어 물리는 점원과 뒤에 선 아이들
09/ 09 · 마지막 장

그리고 채소가 될 뻔했다

1981년 9월 3일, 미국 농무부는 줄어든 급식 예산에 맞춰 식단 구성을 유연하게 하는 규정안을 내놨다. 피클 렐리시 같은 조미료를 채소로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케첩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농무장관 보좌관 제임스 존슨이 기자들에게 설명하다 케첩을 꺼냈다. 감자튀김이나 햄버거 등과 함께 제공하면 채소로 분류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논란은 곧 「케첩도 채소냐」로 번졌다.

반대한 상원의원 중에는 존 하인즈도 있었다. 케첩 회사 창업자 헨리 하인즈의 증손자였다.

존 하인즈 상원의원1981년

“케첩은 조미료입니다.
내가 들어본 규정 중 가장 우스운 규정이에요.”

같은 달 25일, 규정안은 철회됐다. 11월 말에는 담당 행정관이 그 자리를 떠났다.

케첩은 채소가 되지 않았다.

대충, 한마디

생선으로 시작해서 채소로 끝날 뻔했네요.

끼워팔기

필리핀에서는 바나나를 넣었다

열대의 밝은 작업대에 놓인 바나나와 절구, 그리고 완성된 붉은 소스 접시

토마토가 케첩의 대표가 됐다고, 재료의 변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필리핀에는 바나나 케첩이 있다. 바나나에 설탕과 식초, 향신료를 넣고, 붉은 색소로 익숙한 케첩 색을 내기도 한다.

워싱턴대에서 화학과 약학을 공부한 식품화학자 마리아 오로사(Maria Orosa)가 1930년대에 개발했다. 수입 토마토 케첩은 비쌌고, 필리핀 기후는 토마토를 키우기에 맞지 않았다. 대신할 재료를 현지에서 찾은 것이다.

그 재료가 바나나였다.

바나나 케첩은 필리핀 식탁에 자리 잡았고, 스파게티에도 쓰인다.

생선, 버섯, 토마토를 지나 이번에는 바나나.

빨간색만 보고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른다.

오로사의 바나나 케첩 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30년대로 소개된다. 전쟁 중에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와 구분한다.

매입처

National Geographic — How Was Ketchup Invented? · kê-tsiap 어원과 전파 경로, 1732년 브래들리의 「Ketchup in Paste」와 벤쿨렌, 버섯·호두·굴·멸치, 제인 오스틴, 1812년 미스

Smithsonian Magazine — There's Something Fishy About the Ketchup You Put On Your Burgers · 삭힌 생선 조미료 기원, 댄 저래프스키의 정리, 표기 변이

Smithsonian Magazine — The Birth of Non-Alcoholic Ketchup · 미스의 재료 구성과 브랜디 반 질, 러브 애플, 설탕이 발효를 앞당긴 문제

Mary Randolph — The Virginia Housewife; or, Methodical Cook (초판 1824) · TOMATO / MUSHROOM / WALNUT / OYSTER CATSUP 네 항목, 버섯을 소금에 절여 끓이고 거르는 조미액, 수프에 넣는 용례, 토마토 케첩에 설탕 지시 없음

Mental Floss — When a Quack Doctor Touted Tomatoes as a Medical Cure-All · 존 쿡 베넷의 1830년대 강의와 주장 항목, 케첩 권유, 아치볼드 마일스의 「토마토 농축 추출물」, 1840년의 가짜 알약, 1850년 무렵의 쇠퇴, 학위 판매

Atlas Obscura — When Every Ketchup But One Went Extinct · 벤조산나트륨과 저품질 원료, 와일리와 독약 부대, 메이슨의 실험과 1906년 배합, 두 배의 소금·설탕·식초, 1,200만 병, 광고 문안, 1911년과 1915년, 맛의 단일화

Retail Brew — The iconic design of the glass Heinz ketchup bottle · 투명 유리병을 쓴 이유(하인즈 역사센터 앤드루 매시치), 1866년 피에르 블로의 시판 케첩 평가

Wikipedia — Ketchup as a vegetable · 1981년 9월 3일 규정안, 피클 렐리시 문구, 제임스 존슨의 발언, 존 하인즈의 발언, 9월 25일 철회, 담당 행정관 해임

Wikipedia — John Heinz · 헨리 J. 하인즈의 증손자, 1977~1991년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U.S. National Park Service — Maria Ylagan Orosa · 워싱턴대 화학·약학 학위(1921), 1930년대 바나나 케첩과 그 이유, 점령기 비상식량, 1945년 마닐라에서의 죽음

이 페이지의 그림은 AI로 제작한 이야기용 연출이며, 실제 인물의 외모나 당시 현장을 재현한 기록 사진이 아니다. 연도와 수치는 자료마다 표기가 달라 확인되는 값을 기준으로 적고 갈리는 부분은 성분표와 보충에 남겼다. 랜돌프의 요리책은 전자본 원문을 확인했고, 그 밖의 옛 기록은 자료에 전재된 것을 확인했다.